
젊은 나이에 병을 겪고 나서 삶의 기준이 달라졌다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스스로를 아직 젊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전까지는 건강이라는 것이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것이라고 믿었고, 조금 무리해도 며칠 쉬면 다시 회복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런 생각은 하나씩 무너졌다. 몸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회복이라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반복적이었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체력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피로와 통증이 이제는 분명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무리하면 바로 반응이 왔고, 그 신호를 무시한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버티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점이었다. 예전처럼 참고 견디는 방식은 결국 몸을 더 망가뜨릴 뿐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그 이후로는 삶의 기준 자체가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줄여야 오래갈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건강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전제가 되었고, 앞으로의 생활과 일 역시 이 전제 위에서 다시 설계해야 했다. 이 변화는 단순히 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다시 세우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몸을 지키면서도 계속 살아가야 했던 현실
그 현실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몸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과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은 늘 동시에 따라왔다. 치료 이후에도 병원비와 생활비는 계속 필요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혼자가 된 이후에는 이 모든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는 일은 점점 선택지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장시간 노동이나 불규칙한 생활은 몸 상태를 빠르게 무너뜨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고, 현실적인 수입 구조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블로그라는 선택지가 다시 떠올랐다. 시간을 비교적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고,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이 컸다.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지금의 몸 상태에 맞게 장기적으로 쌓아갈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 중요했다. 물론 블로그가 쉬운 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승인 거절을 겪었고, 다시 도전하는 일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지금의 상황을 놓고 봤을 때,블로그는 현실적으로 가장 무리가 적은 선택지였다.
혼자가된 이후, 블로그는 선택이 아니라 필요가 되었다
혼자가 된 이후에는 선택의 기준이 훨씬 명확해졌다.누군가 대신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결정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막연한 기대나 확신 없는 방향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유행을 따라가거나 누군가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복사하는 방식은 지금의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대신 지금의 몸 상태와 현실을 고려했을 때 감당 가능한 방식으로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정리해 주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이유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분히 기록하려 한다. 결과를 약속하기보다는 과정과 판단을 남기는 쪽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번에는 방향을 잃은 채로 같은 시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만은 분명하다. 젊은 나이에 병을 겪고, 건강을 전제로 삶을 다시 설계해야 했던 지금의 상황에서 블로그는 도피가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였다. 이 기록은 그 선택의 이유를 남기기 위한 시작이다. 지금 이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는 일은, 단순히 글을 쓰는 선택이 아니라 앞으로의 생활 방식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선택은 언젠가 다시 같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속도를 내기보다는 방향을 먼저 바로잡고 싶었다. 조급함 때문에 다시 흔들리기보다는, 지금의 상황과 조건 안에서 현실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블로그는 그 선택 중 하나였고,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무리가 적은 방식이었다. 이 기록이 당장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이유 없이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 만은 분명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선택은 이전과 다르다고 생각한다.